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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클레이브(Autoclave)의 적격성평가(IQ/OQ/PQ)

제약/바이오 GMP 현장에서

오토클레이브(Autoclave)의 초기 적격성평가(IQ/OQ/PQ)만큼이나

현업 담당자들의 피를 말리는 것이 바로 정기적인 재적격성평가(Requalification, RQ)입니다.

 

초기 도입 시점에는 기계가 새것이니 웬만하면 기준을 통과하지만,

1년 이상 뜨거운 스팀과 진공의 스트레스를 견뎌낸 설비는

밸브 씰링의 마모, 배관의 미세한 팽창, 센서의 편차 등 수많은 변수를 안고 있습니다.

 

따라서 RQ는 단순히 서류를 업데이트하는 작업이 아니라,

"이 설비가 여전히 환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완벽한 무균 상태를 만들어내는가?"를 증명하는 혹독한 재시험 무대입니다.

 

오늘은 오토클레이브 RQ 적격성평가 시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핵심 검증 항목 13가지와,

그 이면에 숨겨진 기술적 원리, 그리고 현장에서 놓치기 쉬운 디테일들을 깊이 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1단계] 문서 및 준비 상태 검증 (Preparation & Documentation)

물리적인 시험에 앞서, 모든 밸리데이션의 근간이 되는 '데이터 무결성(Data Integrity)'과 추적성을 확보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가 부실하면 뒤에서 아무리 좋은 온도 그래프를 얻어도 규제 기관의 감사(Audit)에서 심각한 지적(Observation)을 받게 됩니다.

 

1. 서명 목록 (Signature List)

가장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항목입니다.

이번 RQ 프로토콜을 수행하는 모든 인원의 이니셜과 실제 서명을 기록합니다.

추후 로거(Logger) 데이터의 출력물이나 BI 배양 결과지에 서명한 사람이 실제 권한이 있는 인원인지

교차 검증하는 ALCOA+ 원칙의 시작점입니다.

 

2. 전제조건의 확인 (Verification of Precondition)

가장 먼저 이번 RQ 적격성평가 계획서(Protocol)가 품질부서(QA)를 포함한 유관 부서의 최종 승인을 득했는지 확인합니다.

승인된 계획서의 버전 번호를 기록하고, 승인 날짜가 시험 시작일보다 앞서 있는지 체크하여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합니다.

 

3. 시험 장비 확인 (Test Equipment Verification)

온도를 측정할 밸리데이터(Validator, 예: Kaye Validator)와 열전대(Thermocouple, TC 센서), 압력 센서 등의 모델명, 일련번호를 기록합니다. 이 장비들이 만들어내는 Raw Data가 곧 멸균 보증의 증거가 되므로 정확한 기재가 필수적입니다.

 

4. SOP 확인 (SOP Verification)

설비의 운영, 유지보수, 일상 점검에 관한 표준작업지침서(SOP)가 최신 버전으로 현장에 비치되어 있고,

작업자들이 이를 숙지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RQ는 '현재의 절차'대로 기계가 돌아가는지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 교정 확인 (Verification of Calibration)

설비 자체에 부착된 챔버 온도/압력 센서, 자켓 센서들의 교정 성적서(Calibration Certificate) 유효기간을 확인합니다.

센서의 오차가 허용 기준을 벗어난 상태에서 진행된 RQ는 전면 무효 처리됩니다.

 

6. 운전절차 확인 (Operating Procedure Verification)

SOP에 명시된 레시피(Recipe) 파라미터와

실제 PLC/HMI에 입력된 멸균 사이클(예: 121.1도, 20분 유지)의 파라미터가 정확히 일치하는지 대조합니다.


[2단계] 기계적 건전성 및 공기 제거 능력 검증

스팀 멸균의 최대 적은 챔버 내부에 남아있는 '차가운 공기'입니다. 공기가 있으면 스팀이 피멸균물에 닿지 못해 온도가 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진공 시스템의 성능과 챔버의 기밀성을 먼저 증명해야 합니다.

 

 

7. 진공 누설 검사 (Vacuum Leak Rate Test)

챔버 도어의 실리콘 패킹(Gasket)이나 수많은 오토 밸브, 배관 용접부에서 외부 공기가 새어 들어오지 않는지 확인하는 가혹 테스트입니다.

 

  • 시험 방법: 설비의 Vacuum Leak Test Cycle을 가동합니다. 진공 펌프가 챔버 내부를 극진공 상태(보통 50~70mbar)로 만든 후 밸브를 모두 차단합니다. 안정화 시간을 거친 뒤, 정확히 15분 동안 챔버 내부의 압력 상승폭을 기록합니다.
  • 허용 기준: 압력 상승률이 $0.0013 \text{ bar/min}$ 미만이어야 합니다. 15분간 총 상승 폭이 약 $0.0195 \text{ bar}$를 넘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 기준을 초과하면 챔버 어딘가에 미세한 크랙이 있거나 밸브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뜻이므로 물리적인 수리(PM) 후 재평가를 해야 합니다.

 

8. 공기제거 효율 테스트 (Bowie-Dick Test)

공압이 아닌 스팀의 침투력을 눈으로 확인하는 고전적이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 시험 방법: Bowie-Dick Test Pack을 챔버 바닥에서 $100 \sim 200 \text{ mm}$ 높이의 정중앙에 배치합니다. 이 위치는 챔버 내에서 스팀이 도달하기 가장 어렵고 공기가 뭉치기 쉬운 최악의 조건(Worst Case)을 상징합니다. 이후 전용 BD Test Cycle(일반적으로 134도, 3.5분)을 가동합니다.
  • 허용 기준: 사이클 완료 후 팩을 열었을 때, 내부의 시약 인디케이터 패턴 전체가 노란색에서 균일한 검은색(Black) 또는 짙은 갈색(Dark brown)으로 변해야 합니다. 중앙에 원래 색이 남아있다면(얼룩 발생), 펄스 진공 단계에서 공기가 제대로 빠지지 않아 스팀이 중앙부까지 침투하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3단계] 열적 성능의 검증 (Thermal Performance)

RQ의 꽃이자 밸리데이터 엔지니어의 센서 설치 노하우가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멸균물의 적재 패턴(Loading Pattern)에 따라 챔버 내부의 열 분포와 멸균물의 중심부 온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과학적인 데이터로 증명해야 합니다.

 

 

9. 적재상태 열분포 시험 (Loaded Heat Distribution Test)

피멸균물을 실제 생산과 동일한 패턴으로 꽉 채워 넣은 상태에서 챔버 공간 자체의 온도가 균일한지 봅니다.

  • 센서 배치: 챔버 공간의 상단, 중앙(좌/우), 그리고 열이 가장 도달하기 힘든 챔버 하단 드레인(Drain) 쪽에 열분포용 TC 센서를 공중에 띄워 설치합니다.
  • 허용 기준: 멸균 유지 구간(Sterilization Hold Time) 동안 모든 열분포 센서의 온도가 $121.1^\circ\mathrm{C}$ 이상을 유지해야 하며, 센서 간의 온도 편차가 기준 범위 이내여야 합니다.

 

 

10. 적재상태 열침투 시험 (Loaded Heat Penetration Test) 및 $F_0$ Value

이 시험이 오토클레이브 밸리데이션의 핵심입니다. 공간의 온도가 아니라 피멸균물(멸균팩, 실리콘 튜브, 스텐 부품 등)의 가장 차가운 중심부에 열이 제대로 뚫고 들어갔는지를 검증합니다.

  • 센서 배치: 14개의 열침투용 TC 센서와 생물학적 지시제(BI)를 멸균물의 내부 깊숙한 곳(가장 온도가 늦게 오르는 곳)에 찔러 넣거나 부착하여 포장합니다.
  • 허용 기준: 열침투 센서의 최소 $F_0$ Value 값이 $18$ 이상이어야 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F_0$ (치사율, Lethality)는 멸균의 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미생물이 사멸하는 속도를 수학적으로 누적 적산한 값입니다. 기준 온도 121.1도에서 1분간 머물렀을 때 얻는 멸균 효과를 $F_0=1$로 정의합니다.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F_0 = \int_{t_0}^{T_n} 10^{\frac{T - T_b}{Z}} dt$$

밸리데이터 장비가 매 초(또는 분)마다 획득한 이산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산할 때는 아래의 누적 합산식을 사용합니다.

 
$$F_0 = \sum \left( 10^{\frac{T - T_b}{Z}} \right) \times \Delta t$$
  • $T_n$: 멸균 종료 시간 (분)
  • $t_0$: 멸균 시작 시간 (분)
  • $T$: 실시간 멸균 측정 온도 ($^\circ\mathrm{C}$)
  • $T_b$: 멸균 기준 온도 (일반적으로 $121.1^\circ\mathrm{C}$)
  • $Z$: Z-value, D값이 $1/10$로 감소하는 데 소요되는 온도 상승값 (증기 멸균에서는 보통 $10^\circ\mathrm{C}$)
  • $D$: D-value, 특정 온도에서 미생물 개체수를 $90\%$ (1 log reduction) 사멸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 (분)

 

즉, 센서의 온도가 $121.1^\circ\mathrm{C}$보다 낮더라도(예: $115^\circ\mathrm{C}$), 그 온도에서 오래 머물렀다면 미생물은 서서히 죽기 때문에 $F_0$ 값은 누적되어 올라갑니다. 반대로 온도가 $125^\circ\mathrm{C}$라면 순식간에 $F_0$ 값이 치솟습니다. 제약 규정 상 무균 보증을 위해 보수적으로 최소 $F_0 \ge 18$을 요구하는 추세입니다.

 

 

11. Vent Filter SIP 온도 확인 (Verification of Vent Filter SIP Temperature)

진공 파괴 시 외부 공기를 무균 상태로 걸러주는 벤트 필터(0.22µm) 역시 멸균되어야 합니다. (SIP: Sterilization In Place)

  • 시험 방법: 벤트 필터의 가장 차가운 부위인 필터 하우징 하단(Vent Filter Drain)에 TC 센서를 설치하고 SIP 사이클을 가동합니다.
  • 허용 기준: 필터 멤브레인에 스팀이 충분히 통과하여 이 부위의 최소 $F_0$ 값이 역시 $18$ 이상이어야 합니다. 만약 응축수가 고여 필터가 젖으면 온도가 오르지 않아 이 항목에서 실패하게 됩니다.

[4단계] 미생물학적 사멸 검증 (Biological Challenge Test)

온도 그래프상의 수학적 계산($F_0$)이 현실 세계에서도 유효한지 증명하기 위해, 멸균기 내에서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내열성 미생물(Geobacillus stearothermophilus) 포자를 직접 챔버에 넣고 돌리는 시험입니다.

 

 

12. BI Challenge 시험 – 열침투 (Loaded Items)

  • 열침투 시험 시 TC 센서 바로 옆에 묶어두었던 BI(Biological Indicator) 14개를 수거합니다.
  • 수거된 BI를 미생물 최적 생장 조건인 $55 \sim 60^\circ\mathrm{C}$ 사이의 인큐베이터에 넣고 24시간 동안 배양합니다.
  • 허용 기준: 14개의 테스트 BI는 모두 보라색(음성, Negative)을 유지해야 합니다. 보라색은 미생물이 완벽히 사멸하여 더 이상 산(Acid)을 배출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만약 하나라도 노란색(양성, Positive)으로 변했다면 미생물이 살아남아 증식했다는 뜻이며, 이는 곧바로 중대한 일탈(Deviation)로 처리됩니다.
  • 대조군 검증: 시험의 신뢰성을 위해, 멸균기에 넣지 않은 원본 BI 하나를 같이 배양하여 반드시 노란색(양성 대조군, Positive Control)으로 변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양성 대조군이 노란색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BI 자체의 불량이거나 배양기 고장이므로 시험 자체가 무효화됩니다. 반대로 멸균기에 돌린 뒤 파손된 BI 배지가 오염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음성 대조군(Negative Control)도 병행합니다.

 

 

13. BI Challenge 시험 – Vent Filter

  • 벤트 필터 SIP 밸리데이션 시에도 필터 하우징 인근 가장 차가운 지점에 BI를 설치하여 멸균을 진행합니다.
  • 배양 조건과 판정 기준은 열침투 BI 시험과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보라색을 유지하여 벤트 필터 역시 무균 공기를 공급할 수 있는 완벽한 준비가 되었음을 미생물학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맺음말

오토클레이브의 RQ 적격성평가는 문서 확인부터 미생물 배양까지 이어지는 길고 험난한 여정입니다.

온도 센서 하나가 위치를 이탈하거나,

배관 내부의 미세한 응축수 트랩 불량 하나가 열침투 $F_0$ 값을 깎아먹어 재시험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13가지의 촘촘한 검증망과 수식 계산, 교차 대조를 통과한 오토클레이브만이

GMP 생산 현장에서 의약품의 무균성을 책임질 자격을 부여받습니다.

데이터를 다루는 밸리데이터 장비의 설정과 PLC 제어 시퀀스의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노란색의 공포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보라색 음성 결과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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